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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베스트무비

시대별 한국영화상에서 최고의 무비, 드라마 리스트

시대별 영화관 변천사

시대별 영화관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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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검사외전(감독: 이일현, 출연: 황정민/강동원)>이 한국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개봉 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해 다른 천만 영화의 500만 관객 돌파 속도를 크게 앞질렀고, 개봉 15일이 지난 현재 누적 관객 수 838만 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라면 한국영화 사상 최고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높습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한국인의 영화사랑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 설렘과 호기심을 안고 영화를 관람했던 조상들의 유전자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1. 1900년대 영화관 서막이 오르다

 

[동대문 활동사진소 터 (이미지출처: 서울스토리, http://www.seoulstory.kr/story/album/0/2000)]

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동대문 활동사진소>가 현재의 동대문 종합시장 주차장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주도해 세워진 <동대문 활동사진소>에서 조선 사람들은 처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입장료는10전이었고, 일요일과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영화가 상영되었는데요. 제대로 갖춰진 좌석이나 장비가 없어 땅바닥과 목재 더미에 앉은 채 영화를 관람해야 했지만, 매일 1천 명 넘는 관객이 입장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동대문 활동사진소>의 인기가 높아지자 <협률사(우리나라 최초의 관립실내극장)>에서도 1903년 7월부터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일본 활동사진회가 소광통교 부근에서, 프랑스인들이 서대문 부근 새문밖 새다리 근처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등 극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당시 입장료는 10~30전 정도였고, 5~10분 정도의 단편영화들과 기생춤, 판소리 등의 무대공연을 함께 보는 패키지 형식의 프로그램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1920년 단성사의 모습 (이미지출처: commons.wikimedia)]

최초의 상설영화관인 <단성사>는 1907년 세워졌습니다. 설립 당시엔 전통연희를 위한 장소였지만, 수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1910년부터 상설 영화관이 되었죠. 1919년 10월엔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영화인 연쇄활동사진극 <의리적 구토>를 상영해, ‘최초의 우리영화가 상영된 극장’이란 기록도 세웠습니다.

[1959년, 화신백화점 옆으로 옮기기 전 우미관의 모습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고등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미관> 역시 당시 대표적인 영화관이었습니다. <우미관>은 최신식 영상장비를 갖추고 프랑스 <파테영화사>에서 수입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입장 요금은 특등석 1원, 1등석 50전, 2등석 30전, 4등석 10전이었고 단체관람 할인혜택도 주어졌습니다.

 

극장이 증가하고 상영되는 영화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영화는 단기간 사이 대중문화로 뿌리내렸는데요. 당시 틈만 나면 극장에 다녀가는 영화 애호가들을 가리키는 ‘애활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니, 극장의 인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2. 일제강점기의 영화관

[한국영상자료원의 <청춘의 십자로> 변사공연 (이미지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일제강점기 시대 상영되었던 영화는 주로 외화나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영화를 해설하는 변사가 무대에 오르곤 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변사가 어떤 언어로 해설하는지 미리 알아본 후 극장을 방문했는데요. 일본인 관객을 위해 일본어로 해설하는 변사를 둔 극장은 남촌 지역에, 조선인 관객을 위해 조선어로 해설하는 변사가 있는 <단성사>, <조선극장>, <우미관> 등은 종로 인근에 각각 분포했습니다.

 

일본인 극장과 조선인 극장이 분리되는 흐름 속에서, 극장은 점차 정치적 색깔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 극장은 조선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굳어져 독립운동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죠. 3·1운동 당시 거리 시위가 힘들어지자 <단성사>와 <우미관>의 관객들이 영화상영 도중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던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총독부는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변해가는 조선인 극장을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꼬투리를 잡아 극장 영업을 중단시키는 등 총독부의 영업 방해가 이어진 결과, 일제강점기 말에는 명맥을 유지한 조선인 극장을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반면, 일본 자본으로 성장한 영화관들은 최신시설과 장비를 갖추며 대형영화관으로 변모할 수 있었죠.

3. 해방 이후 영화관

해방 이후는 대한민국 영화계는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극장이 사라졌고, 그나마 살아남은 곳들도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제작 역시 어려웠기 때문에, 극장들은 영화 대신 창극이나 여성국극을 주로 올려야 했는데요.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굿’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풀어내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4. 1960년 한국 영화 전성기 속 영화관

[옛 국도극장의 모습(이미지출처: 문화콘텐츠닷컴)]

 

서울의 개봉관은 종로구와 중구 일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951년에는 <수도극장(이후 스카라극장)>과 <단성사>만 있었지만, 이후 영화편수와 관객 수가 증가하며 1,000석 이상의 대규모 극장들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1954년 <국도극장>, 1956년 <중앙극장>, 1957년 <명보극장>, <국제극장>, 1958년 <대한극장>, <세기극장>, <아카데미극장>, <반도극장(이후 피카디리극장)>, 1962년 <아세아극장>이 각각 건립되었죠.

 

극장별로 상영하는 영화의 성향이 달랐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가령, 종로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중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 보니, 인근의 <반도극장>, <대한극장> 등은 자극적인 외화를 주로 상영했다고 합니다. 반면, 본래 외화관이었다가 1963년에 방화관으로 전환한 <아카데미극장>은 청춘영화를 상영하며 청년층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5. 소극장 전성시대

1970년대 들어 텔레비전이 전국 가정에 활발히 보급되며, 극장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안방극장’ 때문에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극장 역시 자구책을 내놓았습니다. 심야상영을 하거나, 이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외화를 상영하는 등의 대책은 일정 성과를 거두며 젊은 층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1983년 1월 27일 경향신문 기사, 서울의 소극장들의 모습 (이미지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편, 1981년 개정된 공연법에 따라 300석 이하의 공연장을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소극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주거지역에 자리 잡은 최초의 소극장 <영동극장>은 기존 개봉관보다 관람료가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영동극장>의 성공으로 그 일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재개봉관을 보수한 소극장과 신축 소극장들이 잇따라 세워졌습니다.

 

 

6. 복합상영관의 탄생

소극장들은 10여 년 만에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공의 원동력이었던 저렴한 관람료가 양날의 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자본을 끌어 모아 상영관 확장에 나설 수 있었던 소극장은 소수에 불과했죠.

 

이 무렵, 소극장의 순기능에 주목한 자본가들은 중•소형 상영관을 섞은 복합상영관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12월, 세 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다모아 극장>과 1987년 <씨네하우스 2관>이 개관하면서 본격적인 복합상영관의 시대가 열렸는데요. 몇몇 복합상영관들은 식당과 쇼핑센터를 건물에 배치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원조라 할 만합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4D 상영관 (이미지 출처: CGV)]

복합상영관 시대가 개막되며, 극장 안에 적용되는 기술 역시 진일보했습니다. 거대한 스크린을 구현한 아이맥스 영화관, 실감나는 입체영상을 선보이는 3D 상영관에 이어, 촉각과 후각 등 오감을 고루 충족시키는 4D 상영관까지 등장했습니다. 얼마 전엔 관객의 시선이 미치는 270도 화각 전체에 영상을 비추는 3면 스크린 상영관까지 등장했죠.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템퍼 시네마 (이미지 출처: CGV)]

최근 영화관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예고했습니다. 첨단 기술 도입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관객의 편의를 더욱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건데요.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템퍼 시네마>는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간단한 버튼으로 머리, 상체, 다리 각도를 조절하며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는 데다, 이불과 간단한 식음료까지 제공되어 영화 상영 내내 특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차별화된 기술, 관객을 위한 편의 증진으로 ‘안방극장’과의 차별화에 성공한 영화관이 앞으로도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영화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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